본 논문은 일본 고도성장기(1955~1972)에 제작된 특수촬영 영화 <고질라> 시리즈를 중심으로 괴수를 다루는 영화적 상상력과 전후 일본의 집단적 기억과 정체성 변용과의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1954년에 개봉된 영화 《고질라》는 핵실험으로 깨어난 ‘수폭괴수’ 고질라를 통해 전쟁과 피폭의 기억, 그리고 냉전 시대의 폭력적 위협을 알레고리적으로 담아냈다. 이 영화에서 고질라는 일본의 도시를 유린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그려졌으며, 고질라를 물리치며 스스로 목숨을 버린 과학자 세리자와의 자기희생적 결단은 폭력의 연쇄를 거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즉, 이 영화는 냉전 시기 미소의 핵 무기 경쟁과 전쟁 위협에 대한 일본인의 불안을 반영하며, 그것에 대한 대안적 담론으로 ‘평화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고질라> 영화는 괴수 간의 대결을 중심으로 한 서바이벌 장르로 변화했다. 이 시기의 고질라는 일본을 침략하는 외부 괴수들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점차 친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재구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 소비사회의 발전과 관객층의 저연령화에 부응한 상업적 전략의 결과였다. 동시에 이것은 전쟁에 대한 불안이 약해지고 그 결과 평화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지가 대세를 형성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폭력의 표현에 대한 더 큰 자유를 원하는 심정이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특히 고질라는 수폭괴수의 아이덴티티에서 벗어나고 피폭의 기억에서 점차 분리됨으로써 현실적 대응물과 연결되지 않은 소위 시뮬라크르로 변모했다. 본 논문은 이러한 고질라의 변화가 단순히 영화적 트렌드의 변화를 넘어, 전후 일본사회의 기억 재구성과 문화적 정체성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1950년대 고질라가냉전기 폭력과 전쟁의 기억을 알레고리적으로 드러냈다면, 1960년대 이후의 고질라는 폭력의 유희화를 통해 관객의 흥미를 유도하며 현실과는 분리된 쾌락의 대상이자 유희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변용은 냉전의 위협이 편재했던 1950년대를 ‘전후 속 전시’로 타자화하고, 이에 대해 1960년대를 ‘전후 속 전후’로 의미화하는 방식으로 전후라는 시간을 재편하려 했던 당대의 집합적 의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 Pub. Date : 2025
- Page : pp.21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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